토끼와 옹달샘 이야기
토끼와 옹달샘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내가 이걸 어떻게 키운 건데......
한여름 더위가 목까지 차오르는 삼랑진 장터의 오후 늦은 시간. 장마당에서 한 블록 쯤 들어앉은 마트로 들어서는 길목에 노쇠한 시골 할머니가 깔아 놓은 자그마한 좌판이 있습니다. 좌판에는 상추와 고추, 깻잎, 부추 등과 같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밭작물들이 오막조막 놓여 있습니다.
거기에서 한 중년 여인이 흥정을 벌입니다. 고추를 사려던 중년 여인은 할머니가 올려준 덤이 적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고추 서너 개를 더 올려줍니다. 여기까지는 시골 장터에서 만날 수 있는 인심이고,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그런데 중년 여인은 방금 마트에서 고추를 보고 왔는데, 거기 것보다 많이 비싸다면서 덤을 더 올리라고 요구합니다. 세 번의 덤을 요구하자 할머니의 시선이 조용히 여인의 어깨 너머, 허공으로 날아갑니다. 그걸로 할머니의 거절 의사가 전달된 겁니다.
여인이 떠난 후. 할머니는 먼 하늘에 달아놓았던 시선을 힘 없이 거두고 주섬주섬 고추를 다시 정리합니다. 그러면서 혼잣소리를 밷어냅니다.
“내가 이걸 어떻게 키운 건데......”
할머니의 그 말씀, 그 푸념을 이해하는 데 3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허공에 걸어두었던 할머니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봄이 되면 서둘러 밭이랑을 만들고, 제초 비닐을 덮고, 모종을 구해서 심고, 지주대를 설치해서 묶고, 거름을 주고, 강풍이 오면 쓰러진 고추들을 다시 묶어세우고, 가뭄이 심할 때는 직접 물을 운반해 뿌리고, 병충해가 없는지 살펴야 하고......
그 과정 하나하나를 소홀히 했다면, 할머니의 좌판에 고추들이 올려질 수 없었다는 점을 이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키우는 사람의 입장이 단순히 그걸 사 먹는 사람의 입장과는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계화 영농, 하우스 영농, 규모의 영농과 같은 영농 합리화 정책이 농작물 가꾸는 일을 편리하게 바꾸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했다지만, 할머니는 기계를 사용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하우스 재배도 어려웠을 겁니다. 집 마당이나 텃밭에서, 아니면 아직은 지니고 있는 집 주위의 작은 밭에서 그것들을 키웠을 겁니다.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자신이 그것들을 자식 키우듯 쏟은 정성과 노력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애써서 가꾼 자신의 밭작물이 비싸다고만 하는 사람이 원망스럽습니다.
고추뿐만이 아니라 모든 농작물은 가꾸는 사람의 정성이 없으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평가 단계에서는 그런 정성과 노력을 반영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로지 품질과 가격만으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자본주의 시장 경쟁 원리에서 부인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연수원에서 처음 고추를 수확했을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난생처음으로 고추를 직접 가꿔 수확하고 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뿌듯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인들과 조금씩 나누고, 회사 식당에 보내 직원들이 연수원에서 키운 고추 맛을 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고추의 가격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서 시장에 나와있는 고추 값을 물어봤습니다. 내심으로는 그 가격을 통해 가꾸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심정적으로나마 보상받으려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건 괜한 짓이었습니다. 시장에 나온 고추 값이 내 예상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습니다. 생각 외로 쌌던 것이지요. 깻잎도 그랬고 가을에 수확한 단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농작물 가격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지 알면 실망만 커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자신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간 것은 애틋하고 소중합니다. 그래서 내가 키운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가 그저 보는 사람의 입장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꽃송이가 작아도 시들시들 죽을 것 같던 꽃이 그렇게라도 피어난 것이 대견해서 더 예쁘고, 나무 모양이 좀 못생겼었어도 가뭄에 죽지 않고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더 정이 갑니다. 남들은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평가하지만 키운 사람은 그것들이 성장한 과정까지를 포함해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의 고추는 할머니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대량으로 재배된 마트의 고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애틋함이 있습니다.
연수원의 농작물들이 판매를 목적으로 재배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할머니와 같은 처지가 된다면 이제 분명한 어조로 같은 말을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는 못 팝니다. 우리가 이걸 어떻게 키운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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