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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제목 막내의 명예

 

엄마로부터 퇴근길에 막내 승혁이를 태워오라는 명령(?)이 있어 약속 장소에서 승혁이를 태웠다. 올해 11살이건만 아직도 귓 볼에 털이 보송보송한 것이 어린애 티를 벗지 못했다. 녀석이 차에 타자마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빠 오늘 오전에 혹시 작은누나가 전화 했었어요?"
"아니, 왜? 작은누나가 전화할 일이 있다던?"
"전화 안했어요?"
"전화가 없었는데...... 왜? 무슨 일 있었냐?"
"......"
차내 거울에 비친 녀석의 표정이 여전히 밝지 못하다.
"아니요......, 근데 작은누나가 자꾸 위협을 가하잖아요."
위협이라니?  가하다니?  녀석은 항상 이렇게 근사한(?) 말을 쓰기 좋아한다.
"무슨 일로 위협을 가하더냐?"
"저번 일요일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컴퓨터 게임을 했는데, 나보고 밤새도록 게임을 했다고 하잖아요."

음......알만하다. 유빈이가 그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그래, 너는 그런 사실이 없단 말이지?"
"그럼요, 내 명예를 걸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했어요."

명예, 아! 우리 아들에게도 어느새 명예라는 게 생겼구나. 명예, 그거 참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의 일에 명예까지 걸어서야 되겠느냐.
"그걸 엄마, 아빠한테 이른다면서 자꾸 시켜먹어요. 그래서 오늘은 못하겠다고 했는데 아빠한테 전화한다고 그러던데요"
"뭘 시키더냐?
"자기가 하던 컴퓨터를 나보고 끄라고 하고, 컴퓨터 학원에서 마치고 엄마에게 데리러 오라는 전화도 나보고 하라고 해요"
"그러면 너는 처음부터 아니라고 시키는 일을 하지 말았어야지, 왜 계속했냐?

녀석이 혹시 뭔가 뒤가 구린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아니라는데도 자꾸 그러니까 귀찮아서 그랬어요."
귀찮아서......, 옳거니, 남자들은 여자들이 자꾸 떠들면 귀찮아서 그렇다고 해 줄 때가 있다. 아빠가 많이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밤을 새웠다는 근거가 없잖아요?"

근거? 그 것도 참 중요한 말이다. 근거가 있어야지. 암, 그것도 막내에게 위협을 가해 부려먹을 정도의 일이라면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빠도 가끔은 엄마에게 근거 없이 당할 때가 있다.

아들이 명예를 걸었고, 근거도 없고, 그렇다면 아빠가 그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 줘야 되지 않겠냐. 우리 집은 남자 둘 여자 셋이 아니냐. 아빠가 아니고 누가 널 도와주랴.

"이제 걱정하지 마라, 네가 떳떳하다면 이를테면 이르라고 해라, 아빠가 엄마하고 의논해서 작은누나 말은 들은 척을 안 할 테니."

막내의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씨-익 웃는 얼굴에 보조개가 더욱 깊이 패인다.
막내야 아느냐.
아빠에겐 아직 네가 밤새워 게임을 했느냐 안했느냐 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걱정없이 환하게 우는 모습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둘째딸 유빈이에게 고하노니.
이 편지를 보는 즉시
현재 네가 막내에게 가하고 있는 위협을 중단하도록 하라.

막내가 명예를 걸었다. 남자에게 있어서 명예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맹세도 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네가 일어났을때, 막내가 게임을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밤을 새웠을 것이라는 너의 주장에는 막내의 말대로 근거가 없다.


근거도 없는 추측으로 사나이로 하여금 명예를 걸고, 맹세까지 하도록 하는 행위는 치사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2001년 8월 1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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