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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제목 큰딸 졸업식

 

큰딸 수빈이의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 전날  큰 엄마도 오시고 하니 바쁜 아빠는 식장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해 졸업식에 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는데 회사로 전화가 왔다.
"아빠, 오늘 오실 거지요"
전화 감이 멀어 미처 어제의 이야기를 확인하지 못하고 전화가 끊겼다. 어쨌든 와 주기를 바라는 것을 알면서 안 가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를 나섰지만 도로의 차들이 움직이질 않았다.
우리 큰딸이 아빠를 찾는구나.
"졸업식에 아빠들은 잘 안 와요. 엄마도 안 오고 혼자 오는 얘들도 많아요."
그랬던 어제 저녁의 말은 그냥 했던 소리였구나.
중학생이 되고 난 후로는 아예 엄마 아빠를 따라나서지 않으려 해 섭섭했었는데 큰딸이 아직도 아빠를 찾는다고 생각하니 급하게 나섰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만지면 으스러질까 조심스럽게 안아보곤 하던 갓난아기가 저렇게 말만한 처녀가 되어 있다. 첫 아이라 기대가 많았던 수빈이는 그런 아빠 엄마의 기대를 알았던지 별탈 없이 잘 자라왔다. 모든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한 적이 없었다. 공부조차도 스스로 알아서 하니 큰아이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속내로 든든해 했었다.

그랬던 수빈이는 사춘기를 맞으면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동생들에게 엄격해지고 매사에 공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춘기여서 그럴 것이라고 위안을 하면서도 신경이 곤두서서 긴장했었지만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점차 원래의 모습을 찾아 안도 했었다.

모든 일을 스스로 계획하고 처리하는 수빈이답게 어느 날, 고등학교는 특수목적고를 가겠다고 했다. 아빠, 엄마는 의논 끝에 그냥  일반 고등학교로 갈 것을 권했다.
그러자 수빈이가 물었다.
"돈이 많이 들어서 그러죠?"
그렇게 묻는걸 보면 덩치만 말이지 여전히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대답했다.
"그런 것은 아니고 일반 고등학교에서도 얼마든지 공부를 잘 할 수 있단다."

이제야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아빠는 혹시 수빈이가 그 학교에 응시했다가 낙방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앞섰었다. 합격했을 때의 기쁨보다는 낙방했을 때의 문제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자존심이 강한 수빈이가 겪게 될 첫 실패는 일상적으로 마무리되기 어려울 것 같았고, 겨우 사춘기에서 벗어나 되찾은 웃음에 먹구름이 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빈이의 생각이 굳어진 듯 해 엄마, 아빠는
"시험이나 응시해봐라. 떨어지면 일반학교에 가면 되니까, 아빠가 들어보니까 그런 학교 간 아이들이 적응을 못해서 일반학교로 다시 오는 아이들도 많다던데...."
최대한 낙방했을 때의 상황을 고려한 포석을 하고 모른 척 했다.

그리고 큰딸은 그 학교에 합격을 했다. 공부를 웬만큼은 해야 들어가는 학교라고 하니 엄마 아빠는 대견스러웠다. 합격을 한 것도 줗은 일이었지만  모처럼 수빈이의 얼굴에 피어나고 있던 웃음이 활짝 만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대문에 더 좋았다.

그러나 곧 문제가 생겼다. 큰딸은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학교 옆에서 하숙을 해야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학교가 멀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면 1시간이 훨씬 넘게 걸리는 통학 거리이니  큰딸의 생각이 무리는 아니었다.
더구나 아침 6시경에 집에서 출발을 해야하고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학교라 집에오면 밤12시가 넘는다고 하니 더욱 낭패였다.

아빠의 대답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자 큰딸이 또 물었다.
"아빠 학비도 많이 드는데, 하숙비까지 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러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장학금 받으면 되요"
그러고는 심각한 엄마 아빠의 분위기가 좀 그렜던지 특유의 싱거운 제스처를 쓰면서 젊은애들이 부르는 랩송에 가사를 붙여 불렀다.
"장학금. 그거 좋은 거야, 암, 좋구 말구. 그거 받아야해. 난 할 수 있어. 받으면 참 좋아. 그럼 좋구 말구..... 바로 그거야"
엄마 아빠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

"너 밥 제 때 챙겨 먹고 잘 할 수 있겠냐?"
엄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밥은 하숙집에서 다 주잖아요. 빨래도 다 해준다는데, 그러면 집에 있는 것과 똑 같잖아요?"

그래, 아직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나이다. 하숙을 해도 네 생활이 불편하지 않고 변함이 없다면 엄마 아빠도 하숙집 주인들과 같다는 말이더냐.
"우선 하숙집을 알아는 봅시다."
엄마가 무겁게 말했고 아빠도 허락은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엄마는 항상 수빈이에 대해 두 가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아이에 대한 기대가 크다보니 수빈이를 너무 엄격하게 키웠던 것이 후회가 된다는 것이고 한창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했던 초등학교 1, 2학년 시기에 아빠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남들만큼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도 늘 미안하다고 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수빈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젊은 나이에 사업을 하던 아빠는 큰 어려움을 겪었었다. 지금은 너희들 공부시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지만 그때는 우리 네 가족이 살기엔 턱 없이 좁은 집으로 옮겨서 힘든 생활을 했었다. 아빠는 엄마가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들 눈치 못채게 구김살 없이 키워 준 것이 항상 고마울 따름인데 그래도 엄마는 늘 수빈이가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철이 다 들기 전에 곁에 두고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아빠도 그런 엄마 마음과 다르지 않다. 수빈이는 아무래도 대학 공부는 아빠 엄마 곁에서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외국유학을 가겠다고 하니 고등학교 때 부터 부모와 떨어져 생활한다면 너 생활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어쩌면 수빈이가 엄마 아빠 동생들과 함께 사는 생활이 중학교시절로 끝이 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수빈아
아빠와 엄마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했단다. 아이들이 많아 집안이 부산스럽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 놈도 없어서는 안될 아이들이었다고.

게다가 수빈이는 우리 집에서 아빠의 안마사가 아니었더냐. 어릴 때는 고사리 같은 손이 고물 거리는 것이 귀여워서 사랑스러웠고 이제는 엄마보다도 힘이 센 수빈이가 하는 안마가 시원해서 행복하단다. 수빈이가 없다면 칠칠치 못하게 아직 라면하나 커피 한잔을 스스로 끓일 줄 모르는 아빠를 누가 챙겨 주겠냐?(엄마가 들으면 섭섭할 지 몰라도 이건 엄마가 집에 없을 때의 이야기이다)

남들은 아빠라는 사람이 안마, 라면, 커피 걱정으로 딸을 하숙시키지 않으려 한다고 나무랄지도 모르지만 아빠는 아직도 그렇게 너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단다.

어쩔 수 없이 꼭 떨어져서 생활해야 할 형편이 아니라면 언제까지 같이 생활하고 싶은 게 엄마 아빠의 마음인 것이다. 또한 아직은 철이 들지 않은 딸아이를 혼자 생활하게 한다는 것이 부모의 입장에서는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엄마 아빠는 그런 마음이었다.

하숙을 하는 것으로 결정을 한 후로도  아빠는 여전히 미련이 남아 하루는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이제 우리 큰딸 얼굴을 매일 못 봐서 어쩌냐. 대학도 여기서는 안 다닐 것 같고 외국유학도 가겠다고 하고 그러고 나면 시집갈거고....... 이제 수빈이와 같이 있을 날이 얼마 없겠네"  
큰딸이 멈칫해서 쳐다봤다.
"아빠는 내가 없으면 보고싶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그럼 보고 싶어서 그랬지, 혼자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너는 엄마, 아빠, 동생들이 안보고 싶겠냐?"
".....그래도 토요일 마다 오면 되잖아요."


그러고 마는줄 알았는데 방학이 끝날 무렵. 큰 딸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하숙을 하지 않고 그냥 집에서 다니겠노라고 했다. 아빠는 그 때 수빈이가 시험에 합격했을 때 보다도 더 기뻤다. 그 또래의 나이라면 하숙을 하면 엄마 아빠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유혹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먼 거리를 통학을 하기로 결정해 준 큰딸이 고맙고 기특했다.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졸업식장엔 제 시간엔 도착할 수 없어 겨우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었다. 큰딸은 졸업식을 한 아이 같지 않았다.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아빠 엄마 나이의 사람들이 졸업식장에서 가졌던 아쉬움이나 섭섭함 같은 것들은 아예 찾아볼 수 가 없었다.
"졸업식장에서 우는 아이가 있더냐"
"아뇨, 아무도 없었어요. 그죠 엄마, 아무도 안 울죠?"

아이들의 감성이 이토록 메말라 가는 것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아빠는, '졸업식장에서 울고불고 하던 일은 어쩌면 중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어려운 시절에, 공부를 한으로 눈물로 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의무교육에 통신, 교통수단이 발달해 언제든지 친구들이고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아이들이 그리 섭섭해 하지 않고  아쉬워 하지 않는 것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 못된다'는 의견에 조금 더 찬성하는 편이다.

그러나 우리 딸만은 좀 엄숙하고 아쉬워하는 여학생다운 모습이 있었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우리딸도 아빠는 전혀 모르는 노래를 좋아하고, 아빠의 워드작업보다 휴대폰 문자메세지 넣는 속도가 더 빠른 신세대일 뿐이었다.

식사 내내 웃고 떠들던 수빈이는 집에 와서도 특유의 싱거운 모습으로 랩송을 만들어 불렀다.
"히히 몇 시간 전 만해도 초졸이었는데 이제 중졸되었다 이거지. 히히, 좋아, 좋아, 졸업식 그거 좋은 거야.  학교도 안가고 좋구 말구"

저 아이가 시험에서 떨어졌다면 오늘 같은 날 저렇게 싱거울 수 있었을까. 아찔한 생각이 들면서 시험에 합격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컷 주책을 떨던 큰딸이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제 사진이 잘나왔는지 보라며 졸업앨범을 들고 쪼르르 뛰어왔다.
"한 번 보세요. 일단 한 번 보시라니깐요"
큰 딸이 앨범을 펼치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딸이 제일 이쁘게 나왔네"
아빠는 큰딸이 펼친 페이지의 많은 얼굴들 중에서 미처 큰 딸을 찾아내지도 못했지만, 우선 우리 딸이 제일 예쁘다고 했다.


2002년 2월 20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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