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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제목 아빠의 금연 소동

 

올해는 연초부터 유난히 금연분위기가 고조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금연을 실천해 담배 판매량이 줄었다고 한다. 코미디언 이주일 선생님이나 야구 해설가 하일성씨의 사례에 영향을 받은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금연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아빠도 그 거룩한 금연 대열에 참가한 사람에 속한다. 아빠가 금연에 거룩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두고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은 잘못된 표현 또는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빠는 감히 금연을 거룩한 일로 평가한다. 금연을 몇 번씩이나 결심하고도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한 사람들은 아빠의 표현을 이해할 것이다.

아빠의 금연 결심은 처음이 아니다. 4년 전에는 3개월 정도 금연을 했었고, 다음 해도 금연을 했었고, 작년에도 했었다. 금연 때문에 쓴 돈도 꽤 될 것이다. 우선 20만원 가까이 하는 금연초를 비롯해서 오징어포. 명태포, 대구포, 목사탕, 고려은단, 종합 안주세트, 캘리포니아 아몬드...... 이렇듯 담배를 대신해서 우리 집에 들어왔던 물량은 엄청났다. 그러나 아빠는 그때마다 금연에 실패했었고, 특히 작년의 실패는 지금까지도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고 있다.

작년 초. 아빠가 퇴근해 오시더니 집에 있던 담배 몇 갑을 척 꺼내놓으면서
"아빠 이제 담배 끊었다. 담배와 관련된 것은 모조리 쓰레기통에 갖다버려라"
하더란다. 그래서 아이들이
"에이, 그러다가 또 피울 거면서....."
라고 빈정거리니까 결연한 모습으로 아니 결연하다 못해 무서워진 표정으로
"정말이다. 이번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겠다. 너희들도 아빠를 본받거라"
하더란다. 너무 진지한 아빠의 표정에 아이들은 이번엔 정말인가보다 하고 집안 곳곳에 굴러다니던 라이터, 서너 갑 정도의 피우지 않은 담배와 재떨이를 모두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는데 아빠는
"아니다. 담배는 도로 가져오너라. 그리고 가위를 가져와서 모조리 잘라서 버려라"
고 하더란다. '아 이번엔 정말이구나'아이들은 신이나서 제각기 가위를 들고 답배 갑에서 꺼낸 담배를 모조리 싹둑싹둑 잘라서 쓰레기통에 버렸건만 아빠는 이틀도 지나지 않아 쓰레기통을 뒤졌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 불미스런 일을 아빠 친구들 계모임에서도 꺼내고 동네 사람 앞에서도 희희덕 거리며 얘기한다. 컴퓨터 게임을 절제하도록 가르치려는 아빠에게 막내 녀석이 '아빠는 담배도 그랬으면서' 라고 빈정대기라고 하면 차라리 끊는다는 소릴 하지 않은 것 보다 못했다는 후회가 드는 일이다.

그러나 올해 아빠의 금연결심은 참으로 비장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금연을 시작하던 그 날. 아빠는 퇴근길에 낙동강을 찾았다. 아빠는 가끔 사업적으로 중요한 판단을 하거나 깊이 생각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낙동강을 찾곤 하는데 그 날은 금연 결심을 위해서 낙동강을 찾았으니 그 결연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금연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겠지만, 애연가가 금연을 결심할 때의 심정은 숙연해 지기까지 한다. 백해무익한 담배를 끊으면서 그럴 것까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마치 백년지기를 떠나보내는 듯한 아쉬움, 자신의 의지에 대한 불안과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가 어우러지면 진지함이 더해 숙연해 지는 것이다.

그 날 김해 평야와 낙동강을 덮고 있던 석양을 마주하고 그렇게 근사하게 금연 결심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빠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보였던지 유빈이가 물었다.

"아빠, 무슨 일 있었어요?"
"아, 아니. 일은 무슨 일.... 아빠 오늘 담배끊었다. 담배와 관계 있는 것은 모두 버려라."
아빠가 단호하게 말했다.
"또 시작이네요"
"아니다. 이번에는 진짜다. 재떨이 어디 있냐? 재떨이를 찾아라. 재떨이부터 없애야 한다."
그러나 아빠가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갔을 때 재떨이도 유빈이도 보이지 않았다.
"유빈아, 재떨이 못 찾았냐?"
"아빠, 또 그러지 마시고 그냥 피우세요."
유빈이는 내다보지도 않고 제방에서 짜증스런 목소리만 내 보냈다.
아빠는 생각했다. 유빈이는 인정머리가 없는 아이구나. 아빠가 어떻게 해서 한 금연 결심인데. 아빠를 격려하고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무시는 하지 말아야지. 금연결심을 아무나 하는 줄 아느냐. 두고봐라 이번에는 끊는다.

곧 수빈이가 돌아왔다.
"수빈아 재떨이 못 봤냐?"
"못 봤는데요. 엄마가 씻어서 화장실에 둔 것 아닐까요?"
"화장실에 없던데"
"그러면 우선 아무거나 쓰세요. 엄마가 오시면 찾겠지요."
"아니 지금 쓰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재떨이를 없애버리려고 그러는데"
무심코 제방으로 들어가려던 수빈이는 그제서야 사태 파악을 하고 아빠를 돌아봤다.그리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고오, 아빠! 또 시작이에요!  그냥 피우세요. 며칠이나 갈 거라고"
"아니다. 이번에는 틀림없다. 작년하고는 다르다."
그랬다. 이번에는 금연 결심을 위해 낙동강을 찾아갈 만큼 아빠의 결심은 확고한 것이었다.
"언제는 안 그랬나요? 돈 아까워요. 그냥 피세요."
수빈이는 금연이 시작되면 으레 과자며 생선포며 은단 같은 것들을 사들이고, 멀쩡한 담배를 버릴 것이라는 것을 훤하게 알고 있었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큰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기분이 상했다. 이번만큼은 성공하리라 몇번을 다짐하고 결정한 금연이라 가족들이 당연히 환영하면서 격려를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아빠 생각에만 빠져 가족들의 반응같은 것은 아예 계산도 하지 않고 있었다.
큰 딸과 작은 딸은 그엄청난 고뇌 속에 결정된 아빠의 금연을 또 한 번 반복될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막내는 일곱시가 넘어서야 제 엄마와 함께 돌아왔다. 엄마는 곧장 주방으로 가고 막내가 아빠와의 포옹을 위해 거실로 왔다. 막내를 껴안으며 아빠가 말했다.
"아빠 담배 끊는다."
막내가 눈치를 챘는지 모르지만 그 날 아빠의 포옹엔 여느 때와는 달리 강한 힘이 실려있었다. 금연 결심 때문이었다.
"크하하하하!"
순간 막내가 너무 큰소리로 웃어버리는 바람에 엄마가 놀라 다시 거실로 나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예요?"
"크하하하, 아빠가 또 담배끊는대요. 히히히"
녀석이 손가락으로 아빠를 가리키며 킥킥거렸다..
"저번에도 만원씩 주기로 해놓고, 안 주셨으면서....."
녀석은 금연약속을 어기면 한 개피에 만원씩 주기로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도 거들었다.
'아저씨. 안될 약속은 아예 하지도 마시지요, 그래놓고  먹지도 않을 것 잔뜩 사들이고,  또 사람 들들 볶으려고.'
"아니, 금연을 한다는데 그런 게 걱정인가?"
엄마까지 그러니 부아가 치밀었다.
"금연을 한다면야 그까짓 짜증, 몇 번이라도 받아주고 먹을 것이라면 소라도 잡아 주겠지만, 먹을 것은 먹을 것대로 사놓고 담배는 담배대로 피우니 하는 소리지요"
"그러게 말이에요."
유빈이가 나오며 톡 쏘아내고
"이번에는 제발 가위로 자르지는 마세요. 돈 아까워요 돈"
수빈이도 빈정거리며 나왔다.
"아니다. 이번에는 정말이다. 정말이라니까"
아빠는 진심으로 말했다. 제발 식구들이 좀 진지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계속 왁자지껄한 야유만 쏟아냈다.
"그만하시지요. 아저씨이. 됐네요. 정 그러면 조금 줄이시던지"
엄마까지 계속 빈정거리자 아빠는 방으로 들어와 누워 버렸다.

이건 아빠가 기대했던 가족의 모습이 아니었다.  
낙동강의 석양까지 바라보면서 그렇게 결연하게 다짐했던 금연이 가족들에게 이렇게까지 냉대를 받을 줄을 몰랐었다.

내가 어디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피우냐.  다 너희들 먹여 살리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 생각 저 생각 복잡하게 하다보니 끊기가 힘든 것이지. 괘씸한 놈들 같으니라구.

매년 반복돼 온 일이니 이솝 우화의 늑대소년과 같은 입장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가족들에게 너무 어이없게 무시를 당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꾸역꾸역 괘씸한 생각이 솟구쳤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가족들의 도움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 어마어마한 일(아빠의 입장에서 볼 때)을  아빠 혼자 감당하기는 어렵고 외로울 것 같았다. 잠시 후 식사시간 되어 아빠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금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속을 어겼을 때는 한 개피당 1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담배 한 개피 피우는데 10만원이면 엄청난 벌금이다. 거의 중앙선 침범에 해당한다. 아빠는 그렇게 파격적인 약속을 해서라도 아빠의 의지를 전하고 싶었다. 또 그만큼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전히 듣는 둥 마는 둥 저희들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빠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정중하게 말했다.
"너희들 이번엔 아빠가 보통 결심을 한 게 아니다. 이번엔 정말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준다. 담배 한 개피당 10만원이다. 10만원. 너희들 10만원이 얼마나 큰돈인 줄 알기나 아냐?"
수빈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아빠, 담배를 끊으세요. 우리한테 자꾸 그러시지 말고 그냥 끊으면 되잖아요. 그러면 10만원 안 주셔도 되잖아요"
우리 큰딸이 그렇게 절도 있고 또박또박한 모범생인지 아빠는 그 날 처음 알았다.
"그러게 말이야. 약속하고 벌금도 안 주실 거면서"
유빈이도 냉큼 아빠의 시선을 잘라먹고 제 엄마를 보고 물었다.
"그런데 엄마, 이번 일요일날 우리 어디 놀러 안가요?"
"잠깐, 아빠 말을 다 들어봐라, 이번에는 정말이다. 아빠는 오늘로 담배와는 완전히 결별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그러니까 아빠, 우리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유빈이가 양손을 벌리는 제스처로 말했다.
"그러니까 유빈이 너는 아빠를 못 믿겠다는 말이지?"
'당근이죠"
"수빈이도 마찬가지냐?"
"그럼요. 그런데 엄마 오늘 피자 시켜주면 안 되요?"
아빠는 일단 딸들은 포기하기로 했다.
막내 승혁이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아마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동안 내가 같은 남자라고 저한테 쏟은 정성이 얼마인데.
"승혁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
"승혁이 너도 아빠를 못 믿겠냐?"
승혁이는 그저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며 빙긋히 웃는 것으로 대신했다. 나쁜 놈. 제 생각에 못미덥더라도 말이라도 격려를 해야지, 말하는데 돈이 드냐 쌀이 드냐 이놈아. 하나 있는 아들놈이라는 게.
도대체 이놈들이 아빠를 어떻게 보는 건가. 아무리 몇 번 약속을 어겼다하더라도 이렇게 아빠를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아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였던지 엄마가 나섰다.
"엄마는 아빠를 믿는다. 이번엔 아빠가 금연에 성공하실 거다"

식사를 마치고 큰방으로 돌아왔지만 아빠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못했다. 여전히 꾸역꾸역 심술이 올라왔다.
"이제 나는 건강을 위해서 금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놈들 미워서 담배를 끊을 거다"
엄마가 키득거리고 웃었다.
"그럼, 그런 생각으로라도 우선 담배를 끊어 보슈"
"만약에 이번에 내가 금연에 실패한다면 그건 순전히 우리 식구들이 협조를 안한 탓이다."
홧김에 밷어 내고 보니 체면만 더 구기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팅한 소리를 냈다.
"자신이 없으니까 또 핑계를 대시는 구만, 그러니까 아빠가 돼 가지구 아이들에게 인정을 못 받는 거에요. 자기가 담배를 끊는다고 스스로 결심했으면 그냥 끊으면 되지 왜 식구들 핑계를 대요?"

하긴 그랬다. 누가 담배를 끊으라고 애걸복걸 한 것도 아니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인 것도 아닌데(가족들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으니까) 공연히 가족들에게 심술을 부릴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금연은 정말이지 힘들게 한 결심이어서 서운한 감정이 쉬 가시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아빠는 한 4-5일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베란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 결국 유빈이에게 들켰다. 아빠는 화들짝 놀라  담배를 감추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으나 유빈이는
"아빠 왜 그러세요?"
하고 물었을 뿐 아빠가 금연을 했었다는 사실을 잊은 듯 했다. 그러니 왜 담배를 피우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결국 버젓이 담배를 붙여 물어도 우리식구 중 그 누구도 왜 금연약속을 어기느냐고 물어본 사람이 없었고, 한 개피 당 내걸었던 10만원의 벌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아빠는 이런 아빠가 서글프고 안타깝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연히 혼자 낙동강까지 가서 금연 결심을 하고, 그거 알아주지 않는다고 식구들에게 짜증내고, 식구들은 응당 다시 피울 것으로 생각하고 관심도 없는데 혼자서 숨어서 피우고. 그리고 내년이면 또 한번 금연을 한다고 난리를 칠 것이고.

막내야 너는 커서도 담배는 배우지 말거라.
아빠가 계속해서 금연에 실패를 하고는 있지만 막내에게 금연교육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빠가 담배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그 고생을 사서하는 일일랑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아빠도 머지않아 금연에 성공한 한 아빠가 될 것이다. 이제 아빠는 금연을 결심하더라도 가족에게 먼저 떠벌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빠 스스로 홀연히 담배를 끊고 , 적어도 6개월 정도는 피우지 않은 후에 당당하게 금연성공을 알릴 것이다.

2002년 4월2일 아빠가


* 혹시 이 글을 읽는 청소년이 있다면 담배만큼은 배우지 말도록 부탁합니다. 아저씨가 나름대로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놈의 담배 때문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담배는 그야말로 백해무익하며 한 번 피우면 끊기도 어렵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쯤이면 담배 피우는 총각은 아예 장가갈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세상이 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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