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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제목 엄마를 도와주자

 

아빠가 편지를 쓴 지가 꽤 오래 되었다. 작년 하반기는 유난히 바쁜 일이 많았던지라 편지를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시간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도 같다.

요즘 들어 아빠가 집에서 하지 못하는 말이 있다. '바쁘다'는 소리다. 아빠보다 더 바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 받는 장소가 바뀌고, 자동차 주행미터기가 앞서가는 엄마를 보면 아빠는 바쁘다는 소리를 할 엄두조차 못 낸다.

아빠는 요즘 엄마가 아빠와 '바쁘기 시합'을 하는 선수처럼 보인다..  

작년 8월엔 일주일간 공부관계로 해외연수를 다녀오더니 얼마 전엔 아빠가 해외출장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관계하는 단체에 연수가 있다며 이틀동안 집을 비웠다. 꼭 그런 행사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아니더라도 매일 매일이 '저러다 병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정신없어 보인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물론 우리가족 모두는 엄마가 없는 집에 익숙하질 못하다. 그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엄마는 우리 가족과 함께 있었고 집이란 공간엔 언제나 엄마가 그 자리에 꼭 같은 모습으로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지난 해 8월 초. 아빠의 여름휴가 기간. 엄마가 일주일간 집을 비웠을 때 우리는 처음 엄마가 없는 공간에 노출되었다.

결혼 후, 가족과는 그렇게 오래 떨어질 일이 없었던 엄마는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던지 가족에게 몇 가지의 역할을 맡겼다. 둘째 딸에게는 아침에 밥하는 일을 맡겼고. 아빠에게는 방학이었지만 학교에 나가는 첫째 딸을 제시간에 깨우고 챙겨 보내는 역할을 맡겼다. 첫째 딸은 학교에 간다는 이유로, 막내는 철이 없다는 이유로 '아빠 말씀 잘 듣는 것' 외에는 별다른 역할이 주어지질 않았다.

아빠는 우선 아이들 방에 있던 알람시계를 큰방으로 가져다 놓았다. 한 개로는 불안하다는 생각에 막내의 방에 있던 것도 곁들어 두 개를 가져다 놓았다. 큰딸은 학교가 먼데다 0교시수업까지 하는 탓에 적어도 다섯 시 반에는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여섯 시에는 깨워야 한다고 했다. 용케도 아빠는 정확하게 알람이 울리는 시간에 일어났다. 평소의 아빠로서는 일어나 본 적이 없는 시간이었다. 하품이 쩍쩍 나오고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우선 아침밥을 지어야 했다. 밥은 둘째딸 담당이었다. 둘째 방에 가 보았으나 둘째는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아빠는 아빠가 밥을 짓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쌀을 씻었다. 군에서도 밥을 지어본 적은 있었으니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씻은 쌀을 압력 밥솥에 옮기고 나니 물을 얼마나 부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물을 잘못 맞추면 설익은 밥이 되거나 죽밥이 된다는 것쯤은 아빠도 알고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보니 밥솥에 눈금이 있었다. 쌀의 컵 수와 물의 수위가 표시되어 있었다. 아빠는 밥솥에 부었던 씻은 쌀을 다시 쌀바가지로 옮겼다. 쌀이 몇 컵인지 다시 계량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나니 이번엔 컵이 어떤 컵인지를 알 수 없었다. 쌀 계량컵이 따로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리저리 찾아보아도 그렇게 여겨지는 컵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여러 종류의 컵 중에서 중간 크기 정도의 컵으로 계량해서 다시 밥솥으로 옮긴 후 컵 수에 맞춰 표시된 수위만큼 물을 부었다.  

스위치를 누른 후 큰딸을 깨웠다. 큰딸은 좀처럼 일어나질 않았다. 피로에 지친 모습이 안쓰러워 억지로 깨우기도 힘들었다. 통학 버스를 겨우 만날 수 있을 시간에 일어난 큰딸은 알아서 밥을 챙겨먹고 갈 테니 아빠는 그만 주무시라고 했다. 역시 맏이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딸이 세면을 마칠 무렵 아빠는 냉장고에서 김치며 반찬 통을 꺼내 놓고 밥솥을 열었다. 그러나 아직 밥이 다 되지 않은 상태였다. 물을 맞추는데 너무 시간을 허비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밥을 먹여서 보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큰딸은 학교 식당에서 먹으면 된다며 채 말리지도 못한 머리로 바쁘게 뛰어나갔다. 방학기간에도 0교시 수업을 해야하는 아이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째 딸과 막내는 아홉 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막내에게 밥이 다 되었는지 보라고 했더니 녀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아빠가 밥을 했어요?"
"그래"
"우와 아빠가 밥을 다 할 줄 아세요?"
"왜? 아빠는 밥도 못하는 줄 알았더냐?"
그런데 밥솥을 열어본 막내가 말했다.
"그런데 아빠, 밥 색깔이 왜 이래요?"
"왜?"
"밥이 너무 하얀데요."
"밥 색깔이 하얗지, 그럼 무슨 색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색깔이 이상한데요."
그렇지 않아도 중간 컵으로 쌀을 계량했던 게 꺼림칙했던 터라 아차 싶어 들여다보니 막내의 말대로 밥이 이상해 보였다. 설익어 있었다.
"아무래도 물이 모자랐던 모양이다. 물을 더 부어놓으면 될게다"
부자는 그렇게 의견을 모아서 큰 컵 가득한 물을 고루 펴 뿌리고 다시 밥솥을 닫았다.
물론 그날 우리는 그 밥을 먹지 못했다. 막 휴가를 마치고 온 도우미 아주머니는 물을 못 맞춘 것도 문제이지만 스위치를 잘못 누른 것 같다며 어이없이 웃었다.

다음날 저녁 아빠는 중요한 손님을 만났다. 구두를 벗고 들어가야 하는 자리였는데 손님들에게 방석을 권하던 아빠는 아빠의 양말이 이상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그 날 회색 양말을 신었었는데 아무래도 양말 색이 달라 보였다. 그러나 막 인사가 나누어지고 이야기가 시작되어 양말만 내려다보고 있을 형편이 못되었다.

대화가 무르익고 술이 몇 순 배 돈 후 화장실을 다니러 나왔던 아빠는 그때야 정확하게 아빠의 양말을 관찰할 수 있었다. 얼른 보기엔 같은 회색이었지만 아빠는 짝이 맞지 않은 양말을 신고 있었다. 더욱 두드러지게 다른 것은 양말에 새겨진 상표였다. 한쪽에는 토끼 문양이, 다른 쪽엔 여우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짝이 맞지 않은 양말을 신고 있다고 생각하니 좌석이 내내 편안하지 못했다.

아빠의 왼쪽 발을 보는 사람은 '저 양반이 여우 문양의 양말을 신었구나' 오른쪽 발을 보는 사람은 '토끼 문양의 양말을 신었구나' 라고 생각 할 테고, 양말을 바로 신었는지 발을 모아 세우고 검사할 사람도 없건만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너스레를 떨며 격의 없이 대할 수 있는 손님들도 아니어서 아빠는 그 시간 내내 양쪽 발에 모래주머니를 찬 듯 곤혹스러웠다.

엄마가 없는 동안 아빠가 겪었던 불편과 해프닝이 어디 그 것뿐이었겠냐 마는 그것으로도 엄마의 빈자리를 알기엔 충분했다. 평소에 엄마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은 해왔지만 체험보다 더 큰 깨달음은 없기 때문이다. 아빠로서는 새벽에 챙겨보내서 밤 열두 시가 다되어야 돌아오는 큰딸만으로도 힘이 부쳤다. 둘째와 막내가 방학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 상태에서 그랬으니 아빠까지 합세한 평소의 상황은 충분히 짐작이 됐다.

엄마가 바빠지면서 너희들이 예전처럼 엄마가 집에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런 집 아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아빠 역시 엄마가 아빠보다 늦게 오는 날이면 낯선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맥이 풀릴 때가 있다. 엄마의 입장을 생각해서 내색을 않으려 해도 17년을 같이 살아온 사람의 마음은 쉽게 읽히는 법이다.

가방을 든 아이 셋에 사업을 하는 아빠까지를 내조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하자니 엄마로서는 구석구석이 아쉬움이고 부담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엄마는 될 수 있으면 일의 범위를 한정하고, 힘든 일을 나누고, 목표에 맞는 일만을 선별하려 애쓰는 듯하다. 그러나 그 일들이라는 게 이리저리 얽혀 연관되는 것이고 보면 생각대로 처리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엄마는 나름대로 잘 정리하고 적응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하루는 출, 퇴근시간이 정해지지 않았을 뿐, 오전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아빠나 일반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집안 일을 도와주신다고는 해도 엄마 몫의 일은 따로 있을 것이다. 아빠의 바쁜 일은 바깥에서 끝나지만 엄마의 일은 집에서나 바깥에서나 끊임없이 계속되고, 게다가 공부까지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그 부담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엊그제 설날. 너희들과 할아버지 댁에 가던 차 안에서, 아빠가 가족은 사랑과 관심을 먹고 산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 사랑과 관심이란 상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더욱 필요한 것이고 그 가치를 발하는 것이란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무심코 하는 의례적인 말이나 내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내는 몇 마디의 관심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이 되어 가슴으로 아픔으로 다가서는 사랑과 관심이 진정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법이다.

요즘의 엄마에겐  그런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것 같다. 막내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고, 아빠의 사업도 큰 어려움이 없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건강하니 그동안 엄마가 가족을 잘 보살펴왔다고 볼 수 있다.

아빠는 너희들에게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실 엄마는 너희들과 아빠 때문에 엄마의 일을 늦게 시작했다. 너희들이 조금 더 클 때까지, 아빠의 사업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서 시작한 일이고 공부이다 보니 나이에 겨워 더 힘겹고 어려운지 모른다.

이제 우리가 그런 엄마의 힘을 덜어주자. 엄마가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작은 꿈이나마 이룰 때까지 조금씩의 불편을 참고 격려하고 도와주자.



2003년 2월 3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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