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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제목 우리 집 팔씨름 대회

 

막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오랜만에 가족 외식이 있었다.
중학생이 될 막내에게 아빠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차이점을 어린이와 청소년이 차이에 견주면서, 책임이 많아지고 자기통제력이 중요시 될 것임을 말해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제 수빈이와 유빈이도 막내를 인격적으로 대하도록 하거라. 지금까지처럼 막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말고."
그러자 조용하던 두 딸이 와글와글 시끄러운 아유를 보냈다.
"에게, 중학생이면 다가 아니에요?"
큰딸은 저야 중학생이 되든 고등학생이 되는 상관없다는 듯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래도 까불면 국물도 없어!"
둘째 딸은 주먹을 불끈 쥐어 막내의 코앞으로 가져갔다.
아빠는 막내를 관찰했다.
막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피식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저 녀석은 배알도 없는 것일까? 사내 자식이 저래서야....
"너희들 승혁이가 가만히 있으니까 정말 힘이 없어서 그런 줄 아냐?"
할 수 없이  아빠가 막내를 거들었다.
"그럼요. 그러니까 꼼짝 못하지요? 아직 멀었어 까불지 말거라이."
둘째 유빈이가 또 주먹자랑을 했다.
"아니다 너희들이 몰라서 그렇지. 남자와 여자는 힘 차이가 많다. 승혁이가 실제로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희들이 누나라고 그 냥 봐주는 것이다."

아빠가 그렇게 말하는 데는 그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며칠 전 둘이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막내가 제 누나들에 대한 불만을 풀어냈었다. 갈수록 횡포가 심하다는 말이었다. 아빠는 그때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해야지 자꾸 약한 모습을 보이니까 누나들이 그러는 것이라고 충고하면서 누나들이 무서우냐고 물었다. 승혁이가 말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여자라서 그냥 봐 주는 것'이라고. 아빠는 그런 녀석이 의젓해 보였었다. 그것도 모르고 제 누나들은 막내를 나약하기만 한 어린애로 보고 있는 거였다.

아빠의 충고에 두 딸은 또한 번 왁자지껄 온갖 야유를 쏟아냈다.
"아이고.... 봐 주기는요. 저거 힘 하나도 없어요. 성질만 더럽지."
"아빠는 승혁이를 과대 평가하지 마세요. 승혁이는 영원한 꼬봉이에요. 아빠는 아들이라고 그저 승혁이 편에서만 이야기하는 거 아세요?"

이 녀석들이 정말 남자아이의 특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구나. 중학교 1학년 남자이이가 중학교 3학년 여자아이에게 힘이 없어서 지겠냐? 아빠는 어떻게 해서든 승혁이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나들이라 그냥 봐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녀석이 제 주장이 생기면서 누나들에 대한 불만이 늘어가는 터라 계속해서 누나들이 함부로 대하면 충돌이 일어날까 걱정도 됐다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격투를 시킬 수도 없고. 아빠는 결국 팔씨름을 시키기로 했다.

"좋다. 그러면 팔씨름을 한 번 해보자. 아빠가 이기는 사람에게 만원을 건다. 승혁아 어떠냐?"
그러면서 쳐다 본 막내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좋아요."
"수빈이에게는 아직 안될 거고. 유빈이 너 자신 있냐?"
"좋아요. 한 번 해 봅시다. 여기서 합시다."
유빈이는 그 자리에서 배를 깔 태세였다. 음식점에는 우리식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다. 집에 가서 하자."
아빠가 손님들 눈치가 보여 말했지만
"아니요, 그냥 여기서 합시다."
유빈이는 그냥 단숨에 끝내버리자는 입장이었다. 둘째 딸이 기세 등등하게 나오자 아빠는 어쩐지 찜찜한 생각이 들어 막내를 살펴봤다. 막내도 팔을 흔들며 자신있어 했다. 그렇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데.......
식구 모두는 집에서 팔씨름을 하기로 결정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큰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거실에서 "으라차차차, 으아"하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아빠가 황급히 거실로 나갔을 땐 막내와 유빈이는 벌써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는  끄어끄억 힘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막내 승혁이의 팔은 이미 다 기울어져 탁자에 다일 듯 말 듯 겨우 버티고 있었다. 막내는 목에 벌건 핏줄을 세우고 계속 버티고 있었지만 승부를 역전시킬 상황은 되지 못했다.
"스톱! 이판은 무효다."
아빠가 말했다.
눈이 똥그래진 유빈이는 팔에 힘을 풀지 않고 다급하게 '왜요? 왜요?'를 계속 외쳤다.
혹시 팔에 힘을 풀면 다 이긴 경기를 질세라 계속 힘을 유지하면서 아빠에게 항의하느라 그렇지 않아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우락부락 일그러져 있었다.
"무효다. 일단 그만해라,"
"왜요? 내가 이긴거죠? "
"아니다. 심판도 없는데 시작하면 어떻게 하냐? 이번 판은 무효다."  
심판이 무효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빈이는 다 이겨 놓은 판이 아까워 계속 버티고 있었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아빠! "
유빈이가 아빠에게 항의를 하느라 잠시 방심한 틈을 타서 막내가 힘을 주었다.
"으라차"
깜짝 놀란 유빈이는 아빠에 대한 항의를 멈추고 다시 막내의 팔을 눌러놓았다.
"까불고 있어, 이 정도면 상대가 안되는 것 아녜요? 그런데 다시하면 뭘해요? "
막내는 다시 다 넘어가 버린 팔을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만해라, 무효다. 심판이 시작도 안 했는데 다시 해야지."

결국 유빈이는 불만으로 통통 부은 얼굴이 되어 팔을 풀었다.
"아빠는 치사쟁이야. 괜히 승혁이가 질 것 같으니까 그러는 거  아녜요?"
"아니다. 승부는 공평해야지."
"우리 공평하게 했어요."
그래놓고 유빈이는 이미 일어서 있는 승혁이를 올려봤다.
"승혁아, 그지? 우리 공평하게 했잖아 그지?"
승혁이는 긍정도 아닌 부정도 아닌 표정으로 팔을 안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너는 TV도 안봤냐? 씨름이든 축구든 경기엔 심판이 있질 않더냐?"
유빈이는 다시 탁자에 팔을 올렸다.
"좋아요, 다시 합시다. 승혁이 빨리 앉아라."
유빈이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아마 첫 번 째 대결에서 비슷비슷한 상황에서 겨우 이겼더라면 결코 양보하지 않았을 유빈 이였다. 유빈이가 쉽게 물러섰다는 것은 다시 하더라도 자신이 있다는 말이었다.

아빠는 은근히 걱정이 됐다. 아직도 팔을 감싸고 인상을 쓰고 있는 막내가 아빠의 걱정을 더했다.
그렇다고 거기서 팔씨름을 끝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좋다. 승혁아 다시 해라. 아빠가 공평하게 심판을 볼 테니 다시 해라."
막내가 앉고, 두 녀석들이 다시 손을 거머쥐었다.
아빠는 막내의 다리를 장식장에 걸쳐 버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빠의 경험상 다리를 버틸 곳이 있으면 힘을 쓰기에 유리했다. 그리고 슬쩍 막내의 손목을 틀어 주었다. 그러자 유빈이가 똥그래진 눈으로 쳐다봤다.
"아빠, 왜이래요?"
"뭘?"
"이렇게 하면 내가 힘을 못쓰잖아요?"
"뭐가 어때서, 이렇게 하면 똑 바르잖아?"
"아빠는 이게 바르게 보여요?"
"왜 네 쪽에서는 비뚤 게 보이냐? 이쪽에서는 바르게 보이는데....."
유빈이가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그냥 합시다."
아빠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렇게 팔씨름을 시작하도록 했다. 두 녀석의 기합소리가 터져나오고... 그리고 더 쓸 것도 없다. 막내는 힘을 써볼 겨를도 없이 탁자까지 내려 가버린 팔을 겨우 버티고는 "아직 다 안 넘아 갔다'를 악을 쓰며 반복했다.
그렇게 몇시간을 버틴다고 해고도 막내의 팔이 다시 올라 올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공연히 힘만 빼는 결과가 될 것이 뻔했다.
"이긴 거 아니에요? 이겼죠? 이번에는 공평했죠? 빨리 결정을 내리세요. 이대로 계속 있어도 좋고.... "
그러더니 유빈이는 마지막 힘을 몰아 기합을 넣었다. 결국 막내는 팔에 힘을 풀고 말았다.
유빈이가 주먹을 쥐어 막내에게 내밀었다.
"까불면 죽어"
그리고는 냉큼 양손을 모아 아빠에게 내밀었다.
"주세요."
"뭘?"
"만원......"
"무슨 소리야..... 이제 한판 했는데.....3판 2승제 아니냐?"
"그럼 또 하란 말예요?"
"너는 TV도 안보냐? 한번에 끝나는 게 있더냐? 천하장사 씨름은 5판 3승제로 한다."
"참 치사 뽕뽕하네요."
"그게 왜 치사한 거냐? 경기 규칙이 그런데. 너 퇴장할래? 심판한테 대들면 퇴장패도 있다."
"좋아요. 그럼, 또 합시다. 승혁이 앉아라. 이번에 이기면 끝나는 거예요?"
유빈이가 다시 탁자에 팔을 걸치고 앉았다.
"아니다. 오늘은 그만한다."
"왜요?"
"승혁이가 힘이 너무 빠져서 안 된다. 내일하자."
"아니 나는 힘이 안 빠졌겠어요? 같이 했는데, 그럼 왼팔으로 합시다."
왼팔로 하나 오른팔로 하나 결과는 마찬가지일 거였다.
"아니다 팔씨름은 오른 팔로 하는 거다."
"아니, 왜 그래요? 그냥 오늘 합시다."
유빈이는 이미 승부와는 관계없었다. 그 놈의 만 원이 문제였다.
"아니다. 내일하자. 유빈이 너 심판 말 안 들어 퇴장 당할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경기에는 퇴장패도 있다."
그쯤 되자 유빈이가 꼬리를 내렸다. 유빈이는 계속 우겨서 경기자체가 무효가 되는 일을 방지하는 게 낫겟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좋습니다. 내일은 꼭해야 합니다. 약속."
아빠는 유빈이 손가락에 약속을 걸고 도장까지 찍고 방으로 들어왔다. 막내 계속 팔을 주무르며 멋적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빠는 막내의 팔을 주물러 주며 말했다.
"승혁아, 내일은 봐 주지 말고 그냥 해버려라."

다음날 아빠는 늦게 집에 돌아왔다. 팔씨름 일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유빈이가 쪼르르 뛰어 나왔다.
"아빠 주세요."
"뭘?"
"만 원"
아빠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거머리....진득이.....
유빈이는 큰방까지 따라 들어왔다.
"빨리 주세요?"
"아니 아직 팔씨름을 하지도 않았는데 돈부터 달라는 건 뭐냐?"
"했어요."
"언제?"
"아빠가 늦게 오시기 때문에 아까 승혁이 불러서 했어요."
아빠는 그렇지 않아도 늦은 귀가여서 피곤한 터에 진드이까지 붙자 두통이 나려했다. 하루를 지나면 대충 넘어갈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아빠가 어리석었다.
"심판이 없는데 어떻게 했냐? 심판이 없으면 무효라니까....."
유빈이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 됐다.
"그럼 승혁이 부릅시다. 다시 할게요."
불러봐야 뻔한 결과였다. 막내에게 또한 번의 패배감를 안겨중 뿐인 일을 굳이 한 번 더 할 필요는 없었다.
"승혁아, 나와라 아빠 오셨다. 팔씨름 다시 하자."
유빈이가 자고 있을지도 모를 막내를 데리려 나서려 했다.
"아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하자."
"또 내일요!........"
유빈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금새 눈물이 고였다. 그 모습은 바람만 스쳐도 쏟아질 소낙비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먹구름 같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빠 스스로 생각해도 치사뽕뽕한 일로 그 악명 높은 유빈이의 눈물 세례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알았다. 만원 준다. 그렇다고 승부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
"알았어요. 그 건 마음대로 하세요."
유빈이는 금새 활짝 핀 얼굴이 되어 아빠가 준 만원 짜리에 '쪽'하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안녕히 주무세요."
상냥하게 인사까지 건네주고는 경쾌한 걸음으로 큰방을 나갔다.

그런데 막내야
한 가지만 물어보자
그동안 네가 먹어치웠던 그 많은 우유,
도대채 다 어디로 간거냐?


2003년 3월 24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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