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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제목 막내야 자신감을 가지거라

 

몇 달 전 중학생이 된 막내가 막 찾아온 교복을 입고 섰을 때, 아빠는 깜짝 놀랐다. 검청색 신사복에 푸른 와이셔츠, 거기에 의젓하게 타이를 맨 모습은 파일럿 같이도 보였고 영국 신사 같이도 보였다.
"에게, 영국 신사는 무슨.......택시 기사님 같은데요."
"아니다,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 같네. 파일럿은 무슨......."
누나들은 비아냥거리고 놀렸지만 아빠는 아무리 봐도 우리 아들이 그렇게 멋지고 의젓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빠가 계속 흐뭇해하며 막내를 쳐다보자 누나들이 핀잔을 줬다.
"요즘 중학생들 다 저런 옷 입어요. 아빠는 다들 입는 교복을 가지고 뭐 그렇게 감격해서 그래요?"
이놈들아 교복이 같다고 사람까지 같다더냐......입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지.....

그렇게 아빠, 엄마의 기대와 누나들의 비아냥을 한 몸에 받으며 중학생이 된 막내는 지금까지 중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이 변하는 모습이다. 관심 분야도 달라지고 매사에 구체성을 띠기 시작한다. 막내가 두드러지게 달라진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빠는 운동 잘했어요?"
"잘하지는 못했어도 남들 하는 만큼은 했었지. 왜? 넌 운동이 어렵냐?"
"아니 어려운 게 아니라....오늘 체육시간에 피구를 했어요. 그런데 공을 잘 못 잡겠던데요. 황당하데요. 창피해 죽을 뻔했어요. 저는 아무래도 유연성이 부족한 것 같애요."
"너 지금까지 피구해본 적 있냐?"
"몇 번."
"그러면 잘 못 받을 수도 있지. 그게 무슨 황당한 일이고 그렇게 창피스러워할 일이냐?"
"엄마는 운동을 잘했대요?"
"엄마? 엄마 앞에서는 운동이야길랑은 아예 꺼내지도 말거라. 특히 공이야기는 꺼내서는 안된다."
"왜요? 엄마도 공 못 받았대요?"
"너희 엄마는 학교 다닐 때 피구 공을 받고 울었다지 않냐......."
"공을 받았는데 왜 울어요? 공을 받으면 살고, 못 받고 맞으면 죽는 건데."
"매번 못 받고 제일 먼저 죽어 나오다가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공을 받고는 너무도 놀라고 당황해서는 그 자리에 주저 않아 울었다는 거 아니냐?"
"히히, 엄마는 운동 신경이 둔한가봐요."

할말은 아니지만 만일 네가 계속 연습을 해도 피구 공을 못 받는다면 그건 순전히 엄마를 닮아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빠가 엄마와 함께 운동을 해보려고 별 수단을 다 부리고 꼬셔도 엄마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아빠가 테니스라도 같이 하려고 벌써 몇 달 째 그놈의 테니스 용품을 사자고 졸라도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다. 일단 엄마는 '공'자가 들어가면 안 된다. 그러니 탁구도 안되고, 테니스도 안되고 , 배트민턴도 안되고 심지어는 볼링도 안 된다.

아빠가 글을 시작하다보니 잠시 다른 쪽으로 쓴 것 같은데 아빠가 오늘 막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엄마 흉을 보려는 내용은 아니란다. 막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해요. 얼마나 창피 당하는데(막내는 주로 쪽팔린다고 표현했지만 아빠가 고쳐서 적는다)......'라거나, '창피해서 죽을 뻔했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더구나. 그러나 그 내용을 들어보면 그렇게 창피스러워 할 일도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앞에서 말했던 피구공만 해도 그렇다. 피구공을 좀 못 받은 게 뭐 그리 창피해 죽을 일이고 황당할 일이냐?  

아빠가 보기에 요즘 우리 막내는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실수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를 하고, 실수를 할만한 일은 아예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이는구나. 또 남보다 조금 못한 것을 지나치게 창피스러워하고 자신감을 못 가지는 것 같다. 1년 전 월드컵 경기 때 우리 나라를 4강에 들어갈 것으로 장담하면서 아빠와 내기를 하던 그 기백은 어디로 갔을까? 고양이가 물어갔을까......쥐가 물어갔을까......

사람은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은 실수를 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때는 창피를 당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경험을 쌓게 되는 것이란다. 아빠도 실수를 하고 그래서 창피를 당하고 당황했던 적이 많단다.

아빠가 처음 사업이라는 걸 시작했을 때 아빠의 나이가 스물 아홉이었다. 큰 회사의 중역을 만날 일이 있어 서울에 갔었는데 그분이 큰 호텔의 커피숍을 약속장소로 정했다. 아빠는 그때까지 다방이란 곳을 다녀봤지 큰 호텔의 커피숍은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커피숍이라는 게 흔하지도 않던 시절이어서 아빠 나이의 사람들이 흔히 들릴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 날 호텔 커피숍이라는 곳을 처음 들어갔던 아빠는 우선 그 분위기에 압도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게 으리으리해 보이고 그저 밟고 지나는 대리석 바닥도 부담스러웠다.
상담이 시작되기 전에 그분이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가 나왔지만 아빠는 그동안 아빠가 봐 왔었던 커피와는 다른 점을 발견했다. 커피엔 프리마(분말크림. 프리마는 상표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알려져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많다. 조미료를 미원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은 것과 같은 현상이다.)도 넣고, 설탕도 넣어야 하는 데 설탕은 보였지만 그동안 아빠가 봐 왔던 프리마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거피 잔에 아주 조그만한 컵 모양의 용기가 같이 놓여져 있었다. 아빠는 그것이 프리마와 같은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는 짐작은 했다. 그러나 혹시 실수라도 할까봐 그분이 어떻게 하는 지를 살펴야 했다. 그 분은 막 설탕을 넣고 커피에 그 작은 용기를 열어 커피 잔에 부었다. '아하! 저것이 프리마가 맞구나' 아빠는 긴장을 풀고 그분이 하던 것과 또 같은 방법으로 설탕을 넣고 그 작은 용기를 열어 커피 잔으로 부었다. 그리고 막 여유 있게 커피 잔을 젓던 아빠는 깜짝 놀랐다. 아빠의 커피가 허옇게 변해 버렸던 거였다. 그것은 커피라기보다는 차리리 우유라고 해야 좋을 만큼 아주 하얀 색으로 변해 있었다. 당황한 아빠는 노신사의 커피를 건네 봤다. 그분의 커피는 그냥 커피색이었다. 그 순간 아빠는 작은 용기에 담겨 있던 프리마(액체크림)를 다 넣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때는 늦었고 아빠 앞에는 이미 우유 같은 커피가 놓여 있었다. 아빠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노신사를 바라봤다. 그분은  잠시 멈칫 하더니 허리를 굽혀 자신의 커피를 아빠에게 밀어 놓고 아빠의 커피를 가져가면서 말했다.
"나도 처음에 이 크림을 타면서 깜짝 놀랐어요. 그게 액체 크림인데 농도가 짙어 조금만 넣어도 그렇게 됩니다. 나도 처음에는 당황한 적이 많아요."
그러고는 심부름하는 사람을 불러 자신이 크림을 잘못 넣었으니 커피를 다시 갖다주도록 부탁했다.  
그 분은 그 후에 아빠의 사업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남의 실수를 그렇게 포용해 넘기는 아량도 같이 가르쳐 주셨다.

4년 전쯤 아빠 회사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 출장이 잦던 때였다. 그 때는 어느 정도 중국 실정에 익숙해 '공산주의 국가라 혹시 잡혀가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매사에 조심하던 긴장이 슬슬 풀리던 시기였다. 그 날은 북방의 심양이란 곳에서 한국으로 오기 위해 좌석 배정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한참을 기다려 곧 아빠의 차례가 될 무렵, 어떤 아주머니가 아빠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가지고 있는 짐이 아빠가 들고 있던 가방 하나 뿐이냐고 물었다. 그때 아빠는 2∼3일의 업무를 위한 여행길이었기 때문에 서류가방 하나만을 들고 있었다. 아빠의 짐이 달랑 서류 가방 하나임을 확인한 아주머니는 자신의 짐이 많아서 그러니 가방하나만 들어서 수속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승객 1인당 화물의 중량이 정해져 있으니 나눠서 등록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신사 체면에 거절할 일이 아니었다. 그까짓 가방하나 들어주는 건 굳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였다. 더구나 억양으로 보아 아주머니는 조선족 동포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모국에서 온 신사가 그런 청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애국심마저 발동했다.
아빠가 그렇게 하겠노라고 허락을 하자, 아주머니는 90도로 굽혀 절을 하고는 절대 업무원에게 남의 짐이라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주머니는 좋은 얼굴이 되어 잠시만 기다리라며 어디론지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아빠는 깜짝 놀랐다. 아주머니가 끌고 온 가방이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었다. 아빠의 기억으로는 아마 그 정도 크기의 가방이면 승용차 트렁크에도 싣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아서였는지는 몰라도 국내에서도 그렇게 큰 여행가방을 본 기억도 없었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큰 가방 두 개도 모자라 크고 작은 가방 몇 개를 더 끌고 왔다. 아빠에게는 큰 가방 하나가 맡겨졌다. 가방은 잘 끌리지도 않았다. 간신히 화물계량대에 가방을 올리려고 하자 가방이 너무 무거워 들 수가 없었다. 아빠가 낑낑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업무원이 가방 안에 든 물건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빠가 알 리가 없었다. 아빠는 그저 일상 용품이라고 했다. 업무원이 다른 업무원을 부르고 저희들끼리 뭐라고 대화를 나누더니 아빠에게 가방을 끌고 옆으로 나서도록 했다. 아빠는 겨우 올렸던 가방을 다시 내려야 했다. 뒤에서 보고 있던 손님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 하며 모두 아빠를 쳐다봤다. 업무원들은 가방을 열어 보이도록 지시한 후 팔장을 끼고 내려다 봤다. 어쩔 수 없이 아빠는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는 가방을 열어야 했다. 가방을 연 아빠는 또 한번 놀랐다. 가방 안엔 엄청난 물건들이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약통, 참깨, 꿀통, 술병 ,참기름 병, 호도알..... 그 외에도 구석구석 이름 모를 물건들이 어찌나 많은지 정신이 없었다. 그때까지는 아빠도 웬만큼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가방을 열어 보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업무원은 그 물건들을 다 꺼내도록 지시했다. 어쩔 수 없이 아빠는 그 많은 물건들을 꺼내 펼쳐야 했다.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그저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던 사람들이 그때부터 더욱 흥미 있는 시선으로 아빠가 꺼낸놓는 물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빠는 그 많은 물건들을 늘어놓느라 등에 땀이 배이고 숨이 헉헉 차 올랐다. 가방의 물건들을 다 꺼내 줄을 세웠을 때는, 아빠의 주위에는 지나 다니던 사람들마져 동그랗게 몰려서 있었다. 그 사람들 눈에는 점잖게 양복을 차려 입은 사람이 꺼내 놓은 물건들이 무척이나 재미 있었을 것이다. 업무원들은 아직도 이 물건 저 물건을 치켜들고 검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아빠는 도대체 이지경이 되었는데 그 아주머니는 어디서 무얼 하는지가 궁금했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아빠가 업무원들의 눈치를 피해 아주머니를 찾고 있을 때, 더 큰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업무원들이 들었던 비닐 봉지에서 터져 나온 호도알들이 데굴데굴 바닥에 떨어져 굴어나갔다. 깜짝 놀란 업무원들이 호도알을 주우러 뛰어 다녔고 아빠는 물론 옆에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도 호도알을 줍느라 정신이 없었다.  
막내야 한 번 생각을 해 보거라 . 그때, 아빠의 꼴이 어떠했을 지를.....  구경을 하던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들도 있었을 텐데 ,그 분들은 아마 아빠를 나라 망신시키는 사람이라고 내심 욕을 했을 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은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아주머니들이나 하는 그런 보따리 장사를 하느냐고 핀잔을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보따리장사도 격이 있는 것인데.

아빠가 사람들이 주어다 주는 호두알을 받아 다시 비닐 봉지에 넣을 때쯤에야 그 아주머니가 보였는데, 아주머니는 저만치에서 안타가운 표정으로 아빠를 지켜보고 있었다. 호도 봉지를 터뜨린 게 미안했던지 업무원들은 그쯤에서 검사를 마치고 다시 가방을 싸도록 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니 아빠는 긴 한숨이 나왔다. 그제야 아빠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 가득 번져있던 땀을 닦아냈다. 그러나 아빠는 땀을 너무 일찍 닦은 것이었다. 분명 가방에서 나온 물건들인데 그것들이 다 가방에 들어가질 않았다. 그런 일들은 요즘도 아빠가 겪고 있는 일인데 엄마가 싸준 출장 가방을 들고 갔다 돌아올 때 다시 정리를 하면 짐이 다 들어가질 않을 때가 많다. 하물며 그 아주머니는 어찌나 구석구석 물건들을 담아놓았던지 거의 삼분의 일은 담기지 않았다. 아빠가 어쩔 줄 모르고 낑낑대자,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이걸 먼저 담고 저걸 넣으라느니 하는 등의 조언을 해 줘, 거의 발로 밟아 넣듯 해서 다시 가방을 쌀 수 있었다.

그것도 인연이라고 아주머니는 탑승을 하고서도 아빠를 찾아와 옆자리에 앉았다. 원래는 아빠의 옆 좌석이 아니었지만, 아주머니는 아빠 옆 좌석 손님에게 양해를 구해서 기어이 아빠 옆좌석에 앉았다. 그리고는 가방을 처리해준 게 너무 고마우니 '남자에게 좋은 약'을 반값에 주겠다고 연변 특유의 말씨로 크게 떠들어댔다. 그 아주머니가 그런 장사를 얼마나 했는지는 몰라도 그런 장사수완이라면 지금쯤은 그 일을 그만뒀을 게다. 잔뜩 기분이 상해있던 아빠에게 소곤소곤 이야기를 해도 사주기가 어려웠을 텐데 그렇게 큰소리로 '남자에게 좋은 약'이라고 떠들었는데 아빠가 체신 없이 그 약을 살 수 있었겠냐? 주위의 사람들이 아빠를 쳐다보며 모두 빙긋이 웃고있는데...... 그 아주머니는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그렇게 아빠를 곤혹스럽게 했다.

사람들은 처음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에게 강도를 조심하라고 한다. 요즘은 사스를 조심하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아빠는 강도보다, 사스보다도 더 무서운 것. 우선은 '큰 가방을 든 아주머니'를 조심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귀국 후, 하도 어이가 없고 맥이 빠져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단 몇 마디로 그 복잡했던 정황을 정리해서 마무리했다.
"당신이 그 사람이 남자였다면 그 가방을 들어줬겠어요? 딴 마음이 있었겠지. 그리고 어딘가 어수룩하게 빈틈을 보였으니 그랬겠지요. 앞으로도 여자들 가방 많이 많이 들어주슈. 고소하구만요."
멀리 중국 땅에서는 성도 이름도 모르는 아주머니에게,  한국 땅에서는 성과 이름을 아주 잘 아는 아주머니에게 연거푸 당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였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아빠가 잘 몰라서 저지른 실수이다. 그러나 사람이 꼭 경험하지 못한 것에만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요즘도 가끔 하는 이야기이다. 신혼여행을 갔던 엄마와 아빠는 다른 신혼부부들과 같이 식사를 마치고 서비스로 나온 수정과를 마시게 되었다. 수정과라면 막내도 잘 알고 좋아하는 음료로 잣 알이 동동 떠있는, 명절 때도 자주 마시는 우리나라 전통 음식이 아니냐. 엄마 말에 의하면 모두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수정과를 마시는데 오직 한 사람. 아빠만이 수정과에 떠있는 잣 알을 하나 하나 건져내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아빠를 쳐다보았겠지. 창피해진 엄마가 할 수 없이 아빠에게
"왜 그 걸 건져내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아빠가 심각한 얼굴로 엄마에게 되물었다.
"이게 뭐지?"
아빠는 지금도 평소에는 고소한 맛에 잘도 씹어먹던 수정과의 잣 알을 하필이면 그날 그 자리에서 왜 그렇게 건져내며 궁상을 떨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사건은 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창피했던 일이다. 그때 엄마는 새색시라 내색을 하지는 못했었겠지만 수정과도 먹을 줄 모르는 한심한 사람과 한평생을 살 일이 걱정스러웠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 이야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로 막내도 기억하고 있을 지 모르겠다. 주말에 이웃 사람들과 함께 가족 동반하여 영화를 보러 갔었지 않느냐. 영화를 상영할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서 모두 음식점으로 들어갔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상영시간이 임박한 상황이었다. 모두들 깜짝 놀라 먹던 음식도 다 비우지 못하고 허둥지둥 나서기 시작했다. 아빠는 좀 늦게 일어났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이미 음식점 밖으로 나가버린 사람들만 쳐다보며 바쁘게 뛰어나가다가 아무 죄도 없는 자동 유리문과 한판 대결을 벌이지 않았더냐. 작은 음식점도 아니였고, 저녁 시간이라 손님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자동 유리문을 들이받고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들 웃음 참느라고 어디 음식이나 제대로 먹었겠냐. 아빠는 어찌나 창피하던지 아픈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머리가 아파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때 그 광경을 보았던 이웃 아주머니는 요즘도 만나면 그이야기를 하며 은근히 아빠를 놀리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아빠가 뻔히 잘 알면서도 실수를 하고 당황했던 일이다. 이렇게 사람은 경험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지만 뻔히 아는 일에 실수를 할 때도 많다. 아빠의 실수담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아마 책으로 엮어도 대하소설은 될 것이다. 그 중에는 여기서 소개하면 가족의 체면이 손상될까봐 소개하지 못할 정도로 창피스러운 일들도 많단다.  어떠냐? 막내가 보기에는 아빠는 실수도 하지 않고 창피도 당하지 않고 사는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아빠도 이렇게 많은 실수를 하면서 살고 있단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빠가 액체크림을 다 쏟아 부어 우유거피를 만든 일로, 아주머니의 가방을 들어줬다가 혼쭐이 난 일로 크게 손해를 본 것은 없다. 수정과의 잣 알을 건져내거나, 자동 유리문에 힘대로 부딪힌 일 때문에 생활에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일이 경험이 되어 비슷한 상황에서 좀 더 조심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그런 실수가 아빠에게 더 도움이 되었을 게다. 요즘은 출장 길에 큰 가방을 든 아주머니가 나타나면 슬금슬금 피하고, 음식점 유리문은 꺼진 불 다시 보듯 몇 번을 살피게 되었으니 말이다.

막내야
누구든 처음 겪는 일에는 실수도 하고 창피도 당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물론 실수를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이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생소해서 때때로 실수를 할 수 밖에 없단다. 사람이 너무 덤벙거려 실수가 잦은 것도 문제이지만 실수할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면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사나이에게는 작은 실수나 창피함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그런 기상이 중요하단다. 실수로 인한 창피스러움은 지나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경험은 앞으로의 생활에 큰 자산이 된다.

며칠 전 엄마와 학원에 등록하러 갔던 막내가 다른 과목에 비해 자신 없는 수학은 빼고 수강 신청을 했으면 하고 엄마에게 부탁했다는 소릴 들었다. 이유인즉슨 수학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알면 창피스럽다는 얘기인데, 그런 소릴 들을 때면 아빠는 꼭 우리 막내가 아빠 아들이 아닌 것 같더라. 어떻게 어려워서 자신이 없는 과목을 더 배우려 해야지, 그 과목은 빼고 잘하는 과목만을 배우려 하는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뭔가 부족해서 그걸 더 배우려고 다니는 것이고 우리 막내도 같은 입장인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구나. 아빠는 아마 막내가 그때는 수정과의 잣 알을 아무 생각 없이 건져내던 아빠처럼 뻔히 아는 일을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 실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어떤 분야는 남보다 앞서기도 하지만 또 어떤 분야는 좀 떨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좀 떨어지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면 되는 것이지 남보다 좀 뒤진다고 해서 아예 할 생각을 하지 않거나 일찍 포기해 버리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다.

오늘 아빠가 쓰는 글을 읽고 우리 막내가 힘과 용기를 되찾아, 매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그런 당당한 아들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막내 파이팅!

2003년 6월 25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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