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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제목 둘째딸이 섭섭한 아빠

 

여름 휴가 여행에서, 엄마는 세 아이들에게 용돈을 나누어 주며 알아서 쓰도록 했다.  환전에서부터 선물이나 기념품 구입까지를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하도록 해보자는 취지였다.

휴가를 마치고 귀국을 해서 보니 아이들이 사온 기념품이 평소아이들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는 게 흥미로웠다. 고등학교 2학년인 큰딸 수빈이는 평소의 성격대로 꼭 필요한 것, 친한 친구들에게 줄 선물만을 아껴서 사온 듯 했다. 그만큼 용돈도 남겼다.

둘째 딸 유빈이. 유빈이가 꺼내놓은 선물 보따리를 본 아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선물이 참 다양하기도 했지만 그 수도 엄청났다. 열쇠고리에서부터 쵸코릿까지...... 조그만 잡화상을 차려도 될 정도라 아빠가 물었다.
“와, 많이도 샀네. 그걸 다 어디 쓸거냐?”
“이게 뭐 많아요, 모자라는 데. 친구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렇겠지. 친구라면 백두산 까지도 뛰어 달릴 유빈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래, 너는 용돈을 얼마나 남겼냐?”
“남기기는요, 모자라서 다 사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많이 사고도 모자라더냐?”
“그럼요. 모자라요.”
둘째 유빈이가 풀어놓은 선물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쵸코릿이었다. 관광지의 주요건물이나 시설의 본떠 만든 쵸코릿은 바둑판같은 상자에 가지런히 들어있어 신기해 보이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 야 이거 신기하네. 이거 한개 먹으면 건물 하나를 통째로 먹는 거 아니냐?”
아빠가 고궁을 본떠 만든 쵸코릿 하나를 꺼내자 유빈이가 기겁을 하고 달려들었다.
“안돼요 아빠!”
“하나만 먹어보자. 이렇게 많은데.....”
“우리반애들 하나씩 줄 거란 말예요.”
유빈이는 아빠가 겨우 들어낸 쵸코릿을 냉큼 빼앗아 다시 제자리에 쏙 넣었다. 머쓱해진 아빠가 물었다.
“이거 몇 개 들었냐?”
“40개 들었어요.”
“너희반애들은 몇 명인데?”
“...... 40명 정원이에요”
“정원이라니? 학급에 정원이라는 게 있냐?"
"......."
"그건 그렇고, 40명 정원이면 현재 인원도 40명이란 말이냐? 전학 간 아이들도 있을 것 아니냐?”
“....... 그래도 안돼요. 한개 빠지면 보기 싫단 말이에요.”
“알았다.”
“그럼 아빠 건 하나도 없냐?”
그때 까지 제가 사온 물건들을 요리조리 정리해 보느라 건성으로 아빠를 대하던 유빈이는 그때야 아빠를 빤히 쳐다봤다.
“아빠 선물을 왜사요? 아빠도 같이 가셨는데........ 아빠가 같이 안가셨으면 몰라도......”
‘안가셨으면 몰라도가 뭐냐 이놈아. 아빠가 같이 안갔으면 당연히 사야지....’ 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아빠는 그냥 둘째딸의 방에서 나왔다.

거실에서는 큰딸이 제가 산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수빈이 너는 아빠 것 사온 것 없냐?”
“없는데요. 왜요? 뭐 필요한거 있으세요?”
“아니다.”
그리고 큰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막내가 제방에서 뛰어나오며 주먹을 내밀었다.
“아빠, 이거, 이거 한번 보세요.”
막내가 펼친 손바닥위에 담배 한 개피가 올려져 있었다.
“이게 뭐냐?”
“한번 보세요.”
막내가 라이터 켜는 시늉을 해 자세히 보니 담배가 아니라 담배와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만든 라이터였다.
“이거 참 기가 막히네. 이거 있으면 다른 라이터도 필요 없겠네.”
아빠는 담배 갑을 찾아 라이터 담배를 넣어 보았다. 담배라이터는 감쪽같이 담배 한 개피의 자리에 쏙 들어갔다.
“야 이거 굉장한 거네. 이거 있으면 주머니도 가벼워지고 라이터 잊어버릴 염려도 없겠다. 그래 너는 친구들에게 줄 선물은 뭘 샀냐?”
아빠가 좋아하는 모습에 입이 쭉 찢어진 막내에게 물었다.
“제 모자 한개 밖에 안 샀어요.”
녀석은 정말 제가 쓸 모자 한개 외에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너는 반 친구들에게 줄 선물이 없어도 되냐?”
“친구들은 안줘도 돼요. 줄려면 다줘야지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주면 더 안 좋아요.”
"그래도 친구들이 섭섭해하지 않겠냐?"
"괜찮아요. 그런 일로 섭섭해 할 아이들은 없어요."
"그러냐."

그리고 며칠 후 야간 강의로 집을 비운 엄마에게서 회사로 전화가 왔다. 식사를 준비해 놓고 나왔으니 집에 가면 먼저 식사를 하라는 전갈이었다. 막내는 저녁을 먹고 올 것이니 괜찮고, 큰딸은 엄마가 돌아온 후에나 올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빠는 둘째 유빈이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유빈이는 아홉 시 쯤에 학원에서 올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리려면 너무 늦으니 아빠가 먼저 식사를 하라고 했다.

그렇다고 학원을 마치고 온 딸이 혼자 밥을 먹도록 할 아빠는 아니다. 배가 고팠지만 유빈이가 오길 기다려 같이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아빠는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다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얼마 후, 아빠는 갑자기 거실의 TV가 ‘우왕’하는 소리를 내는 것에 놀라 눈을 떴는데, 둘째 유빈이가 막 TV를 켜며 앉는 중이었다.  
“어, 유빈이 왔구나, 배고프지? 어서 밥 먹자.”
아빠가 막 일어서며 주방으로 가는데 뒤통수에서
“나 밥먹었는데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돌아섰다.
“어디서 먹었냐?”
“집에서요.”
“집에서? 언제?”
“조금 전에 먹었어요.”
그래서 주방 식탁을 보니 식탁보가 벗겨져 있고 밥을 먹은 흔적이 보였다. 아빠가 기운이 쑥 빠져 유빈이를 되돌아 봤다.
“아빠는 네가 오면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는데......”
“아빠 아직 식사 안하셨어요?”
“그럼 안했지. 그러고 너는 아빠에게 식사를 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너 혼자 먹냐?”
“......”
“아빠가 한 번 물어보자. 너 솔직히 아빠가 식사를 했는지 궁금하기나 했냐?”
그러자 유빈이는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사실은 아무 생각 없이 밥이 차려져 있길래 먹었어요.”
아빠는 그제서야 유빈이가 먹고 난 반찬으로 혼자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밥알이 모래알 같았다.

방학이 끝날 무렵 유빈이가 거실에서 예쁜 상을 만들고 있었다. 팔각형으로 된 조그만 교자상이었는데 모양이 그럴듯했다. 아빠가 신기해서 이리저리 살펴보자 유빈이는 가정과목 방학숙제로 만드는 것이 라고 했다. 밤늦게 숙제를 하고 있는 유빈이를 격려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가 말했다.
“야, 이거 근사하네, 방학 숙제로 만드는 것이라지만 집에서 써도 되겠다. 우리 유빈이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이쁘죠?”
“그래 참 이쁘다. 백화점에서 산 것보다도 더 좋아 보인다야. 이거 학교에서 검사하고 나면 집에 도로 가져 오냐?”
“예, 가져와요.”
“오. 그래, 잘됐다. 그러면 이거 아빠 찻상으로 쓰자. 커피나 차 마실 때 쓰면 근사하겠네.”
그러자 유빈이가 뚱한 표정으로 아빠를 올려봤다.
“안돼요! 나 이걸로 라면 끓여먹을 건데......”
“......!! 라면? "
"......."
"그, 그래라”
얼마나 섭섭하던지 아빠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콱 쏟아낼 뻔 했었다. 아빠가 그동안 유빈이에게 쏟은 정성이 얼마인데. 엄마 몰래, 동생 언니 몰래 용돈을 주었다가 들은 원성은 또 얼마나 되는데......

둘째딸 유빈아.
아빠가 오늘에야 묻는 말이지만, 막내는 어디 아빠가 여행을 같이 안가서 아빠 선물을 샀겠냐? 너희들이 아빠가 막내만 좋아한다고 빈정거려도 현실이 그렇지 않냐. 유빈이 너 같으면 친구들에게 다 나눠주고도 남는 초코릿 하나만 먹자는데 자리가 비면 보기 싫다고 안주는 사람과 부탁도 안했는데 제 마음이 동해서 라이터 사주는 사람을 비교하면 누가 더 좋겠냐? 아빠가 치사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한번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해 보거라. 너희들 말대로 아빠가 막내가 아들이라고 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 씀씀이가 다르지 않냐. 교자상도 네가 만든 것이니 그걸로 라면 많이 끓여 먹거라. 그런데 여학생들이 시도 때도 없이 라면 많이 먹으면 살이 똥똥 찐다더라.

요즘 아빠는 둘째딸 유빈이에게 섭섭한 것이 참 많다.

2003년 9월18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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