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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제목 엄마 생일날 분위기 망친 아빠

 

얼마 전. 엄마의 생일이었다. (실제로는 2개월이 지났구나. 아빠가 바쁘다 보니 그 때 대충 적어두었던 글을 이제야 정리해 올리는구나)
엄마는 생일날에도 바빴다. 아빠는 아침도 챙겨 먹지 못하고 대구까지 강의를 가야한다며 허겁지겁 집을 나섰던 엄마를 저녁 늦게 마중하여 외식을 했다. 중년의 부부가 여덟 시가 넘은 시간에 단둘이 낯선 식당에서 생일식사를 하자니 허전했다. 

그 시간, 고3 입시생인 큰딸은 학교에 있었다. 설사 학교를 마쳤다고 하여도 학교 옆에서 하숙을 하는 입장이니 엄마 생일을 위해 시간을 내기는 어려운 처지였다. 둘째 유빈이도 12시가 되어야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고등학생이고, 막내 승혁이도 10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중학생인 녀석도 시험 기간에는 11시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
 
엄마 아빠가 집에 돌아오고 한참이 지나서야 막내가 왔고, 둘째 유빈이는 열두 시가 넘어 케이크를 들고 돌아왔다. 결국, 우리 가족은 새벽 1시가 가까워서야 엄마의 생일 케이크를 놓고 마주 않았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유빈이가 초를 꽂으며 말했다.

“엄마 마흔다섯 살 맞죠?”

엄마는 마흔넷이다. 올해 아빠 나이가 마흔일곱이니 세 살 아래인 엄마는 당연히 마흔넷이어야 했다. 그래서 아빠가 꽂았던 초를 하나 빼내며 말했다.

“아니다. 엄마는 마흔네 살이다.”
“아니에요. 마흔 다섯이예요.”   

유빈이의 동그란 눈 때문에 아빠는 엄마의 나이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아빠라는 사람이 딸의 말을 듣고 아내의 나이를 다시 확인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빠는 항상 엄마 나이를 아빠 나이에서 세살을 빼는 것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아빠의 나이를 잘못 알고 있다면 엄마의 나이도 달라진다. 자기 나이를 스스로 잘못 아는 사람이 있을까? 없겠지만 아빠는 두어 번 경험했던 일이다. 아빠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그 외의 일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해 지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정신없이 회사 일에 몰두하며 해가 바뀐 줄도 모르고 나이를 정지시켜 놓았다가 어느 날  한 살 더 먹은 사실을 알고 놀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올해도 그러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2004년에 58년 개띠에를 적용해보니 아빠의 나이는 틀림없이 마흔일곱 살이었다. 

“아니다. 아빠가 마흔일곱이니 엄마는 마흔넷이다.”
그러자 막 자리에 앉던 엄마가 말했다.
“나 마흔셋인데. 왜 남의 나이를 한 살씩 두 살씩 늘리고 야단들인지......”
그게 무슨 말인가 해서 아빠가 물었다.  
“마흔넷 아닌가? 내가 마흔 일곱인데.”
“마흔셋이요. 마흔셋! 내가 언제 나이를 그렇게나 먹었다고...... 마누라 나이도 몰라요?”

엄마가 진지했기 때문에 복잡한 상황이 되었다. 우리 식구는 새벽 한 시가 넘어서 벌이는 생일잔치에 앞서 먼저 엄마 나이부터 알아야 했다. 엄마 말이 사실이라면 아빠는 마흔여섯이 된다. 나이가 한 살 준다면 아빠로서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엄마의 나이가 달라진 것이 틀림없었다.

경우에 따라 나이가 달라지는 사람은 있다. 아빠 친구 중에는 줄곧 같은 학년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호적이 잘못되어 친구들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작은 녀석이 있다. 군대도 친구들보다 2년이나 뒤에 갔다 온 놈은 학창시절에는 물론 요즘도 주민등록상의 나이는 인정하지 않는다. 단, 여자들이 있는 좌석에서만큼은 ‘저 친구들은 모두 마흔일곱. 저 혼자 마흔다섯입니다.’라고 나이를 바꾼다. 그리고는 ‘주민증록증으로 확인하자’라며 지갑을 꺼내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엄마 호적이 잘못되었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도 없다. 아빠는 다시 엄마 나이를 계산했다. 정확하게 마흔넷이었다.

“올해가 2004년이지? 당신이 1961년생이지? 그러면 마흔 넷이잖아. 그런데 마흔셋은 무슨 마흔셋......”
엄마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리고 지극히 단순하게 아빠의 복잡한 계산을 정리했다. 
“만으로.”
“......!”

막내와 둘째 딸이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 어이없기는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생일날 자기 나이를 만으로 계산하겠다는 것인지.

“아니, 생일 나이를 만으로 계산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참 이상하네.”
“이상하기는 뭐가 이상해요? 만으로 하면 하는 거지.”

자기 나이를 만으로 쳐서 생일을 치른다고 나무랄 사람은 없다. 하려면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상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작년에 마흔 셋으로 계산해서 초를 꽂았었는데 올해 갑자기 만으로 계산해서 또 마흔 세 살로 한다면 좀 이상할 것 같은데......”

아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가 톡 쏘았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요. 하면 하는 거지...... 그냥 마흔넷으로 합시다. 애들 기다리는 데.”

엄마는 끝내 기다리는 너희들 때문에 자기 나이를 마흔 넷으로 한다는 식이었다. 아빠는 생각했다. 그냥 하기는 뭘 그냥 해. 1961년생이면 하늘이 무너져도 마흔넷인데......

간신히 엄마 나이를 정하고 초에 불을 붙이려고 보니 아무래도 케이크가 좀 이상했다. 아빠가 보기에 케이크는 왠지 흐물흐물해 보였다. 단단한 구석이 없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다.  

“가만 있자...... 그런데 이 케이크가 왜 이러냐? 좀 이상하지 않냐?”

그러자 유빈이가 피곤한 얼굴로 올려봤다. 그러잖아도 늦은 시간에 엄마 나이 정하는데 시간을 보낸 뒤, 또 케이크 상태에 관심을 가지는 아빠가 좀 힘겹다는 표정이었다. 

“생크림 케이크라서 그래요.”
“생크림? 생크림 케이크는 다 이런 건가? 그래도 좀 이상한데...... 잘못 산 거 아니냐? 어디서 샀냐?”그러자 엄마가 나섰다.    
“그게 산지 몇 시간이나 됐는지 아세요? 학교 마치고 산 것을 학원까지 들고 갔다 이제야 왔으니 녹아서 그런 거예요.”

핀잔에 가까운 엄마의 말을 유빈이가 이어갔다.

“아빠, 솔직히 저 오늘 그거 사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학원에서 아이들이 물어보고 선생님도 물어보고, 어떤 아이는 배고픈데 먹어 치우자고도 하고...... 또 케이크 잘못 들면 망가지니까 학원까지 가고 오는 데 얼마나 신경이 쓰였겠어요?”
유빈이는 나도 할말 좀 해야겠다는 입장이 된 듯했다.

“그랬구나, 그럼 학원을 마치고 사지, 왜 미리 사서 그런 고생을 했냐?”
아빠의 말은 혼잣말에 가까운, 그래서 의미 없는 질문에 가까웠다. 아빠는 그 때 촛불을 켜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초에 붙어왔어야 할 성냥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

그래놓고 다음 말을 바로 이어가지 않을 때는 너무도 한심해서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는 경우가 많다. 아빠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유빈이를 보았을 때 유빈이가 그런 표정이 되어있었다.

“학원 마치면 열두 시가 넘는데 제과점이 문 닫고나서 케이크를 살 수 있겠어요?”
“아 그랬구나. 그러면 승혁이가 살 걸 그랬네.”
“케이크는 제가 사기로 약속했었어요.”
“아! 그랬었구나. 아빠가 그걸 몰랐네. 미안하다. 고생이 많았겠구나.”

 늦은 시간이어서 그랬던지 식구들이 평소와는 달리 신경이 날카로워 보였다. 듣고 보니  둘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분위기를 수습해야할 상황이었다.

“가만있자... 그렇다면 이 케이크가 유빈이와 같이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왔다는 거 아니냐? 말하자면 엄청나게 유식한 케이크네. 그래 유빈이는 오늘 학원에서 무슨 공부를 했냐?”
“수학하고 과학...”
“오, 그래. 수학? 그러면 승혁이가 이 케이크 많이 먹어야겠네. 승혁이 너 수학 어렵다고 했잖아. 승혁아 이거라도 많이 먹어라. 뭔가 도움이 되지 않겠냐.”

그러자 곧 여기저기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아빠는 케이크하고 공부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또 공부 이야기예요?”
유빈이가 말했고,
“아빠는 공부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시고는......저 이제 수학도 잘해요.”
승혁이가 짜증을 섞어 거들었다.

엄마도 한소리 했다.
“이 양반은...... 이런 자리에서 그런 얘기는 왜 하는지...... 분위기도 맞출 줄 모르고, 자 어서 케이크에 불 붙여라.”

엄마의 핀잔에는 자기의 나이를 마흔넷으로 확인한 것에 대한 분풀이도 포함된 것이 분명했다. 
둘째 유빈이가 초에 불을 붙이는 동안 결국 엄마는 속내를 드러냈다.

“마흔셋이라면 좀 그렇게 맞춰줄 수도 있는 일이지. 그렇다고 내가 진짜 나이를 줄이겠어요? 정말이지 분위기와는 담쌓은 양반이라니까.”
“.......”
이후로 식구들은 흥이 나지 않았다. 생일 축하노래도 가라앉았고 너희들은 케이크는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어섰다.
엄마의 생일날, 아니 새벽 1시였으니 생일 다음날 치러졌던 엄마의 생일축하 파티는 그렇게 진행되어 마무리되었다. 

아빠는 그날의 일에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케이크를 사들고 학원까지 들고 갔다 온 유빈의 성의를 알지 못했던 것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도 생일케이크까지 동원해 승혁이에게 부담을 주었던 것도 너희들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 같구나. 너희도 이미 알고 그저 한순간의 섭섭함으로 흘려보냈겠지만, 아빠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단다. 

엄마 나이도 그렇다. 어떻게 해서든 한살이라도 줄이고 싶은 중년여성의 감성을 그렇게 논리적으로 따져 바로 잡을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그래? 그럼 마흔셋으로 하지 뭐, 아니, 당신 나이를 마흔으로도 안보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냥 두 살 쯤 줄이지 뭐.’ 그렇게 할 수도 있었던 문제인데. 엄마의 지적대로 아빠는 정말 분위기에 약한 모양이다.
        
너희가 어렸을 때. 우리 집 생일잔치는 꽤나 거나했었다. 거실에 풍선도 매달려 있고, 여러 종류의 과자들이 은박접시에 담겨 엄마 아빠를 기다렸다. 서로 부르겠다고 나서던 생일 축하 노래도 우렁찼고, 선물에는 항상 예쁜 편지가 들어있었다. 아이들이 많아서인지 아이마다 하는 특기자랑을 보고 있으면 어느 학예발표회에 참가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엄마 아빠는 너희들의 그런 모습이 보고 싶어 생일날이 기다려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너희들이 크면서 하나 둘 생일맞이 절차가 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같이 저녁식사를 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되었구나.

올해, 엄마의 생일을 지내고 아빠는 여러 생각을 했다. 그동안 엄마의 생일은 아빠보다는 너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엄마 생일날 당연히 너희가 챙겨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아빠는 엄마 생일날을 기억하느냐 못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졌을 만큼 무심한 입장이었다. 용케도 기억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신랑이었고 어쩌다 잊어버리면 며칠씩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은. 그랬었는데...... 이제는 아빠의 역할이 필요할 것 같다. 내년이면 큰딸을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할 것이고, 곧 둘째 유빈이도 입시공부에 매달리게 된다. 갈수록 너희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 앞으로는 아빠도 너희와 함께 엄마의 생일을 기억하고 신경을 써야 할 것 같구나.

내년부터는 아빠도 너희와 함께 엄마의 생일을 의논해서 아빠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을 생각이다.

2004년 11월 10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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